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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4년 10월 2일 목요일

자살前 그들은 '조용한 신호'를 보내온다


#1. 중3 아들(이모 군·15·이하 모두 사망당시 나이)이 손톱깎이를 들고 다가왔다. "아빠, 저 손톱 좀 깎아주세요." 애교 많던 아들은 3개월 전부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. 한 달 전에는 "앞이 안 보인다"고 호소해 안과에 데려갔지만 "이상이 없다"는 진단을 받았다. 2주 전부터는 "언제 출장가세요?"라고 자주 물었다. 걱정이 커질 무렵 "손톱을 깎아달라"며 다가와준 아들이 고마웠다. 일주일 뒤, 아들은 집에서 목을 맸다. 아버지가 출장 간 사이였다. 아들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. 

#2. "숨쉬기가 힘든데…." 남편(최모 씨·51)은 아내(46)에게 가슴 압박감을 호소했다.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. "내가 오래 살 수 있을까?" 남편이 무심히 물었다. 무직인 남편은 평소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설거지를 해놓는 법이 없었다. 어느 날 남편은 설거지를 깨끗이 해놓았다. 평소 전화를 하지 않던 남편은 이날 아내에게 4번 전화를 했다. 다음 날 남편은 오랜만에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줬다. 몇 시간 뒤 남편은 자살했다. 

스스로 생을 끝내기로 결정한 이들은 자살 전 저마다 '조용한 신호'를 보낸다. 동아일보 취재팀이 자살자 60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 결과를 분석해보니 52명(86.7%)이 가족에게 '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'는 뜻을 담은 신호를 보냈다. 이 중 대부분은 일상 행동에 변화를 보이는 수준의 소소하고 조용한 신호였다.

이 군이 손톱을 깎아달라고 한 건 모든 문제를 부모가 해결해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리의 발현이었다.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으니 어릴 때처럼 도와달라는 신호였다. 이 군과 최 씨가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거나 가슴이 답답하다는 등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 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. 

그러나 가족들은 조용히 스쳐가는 자살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다. 신호를 보낸 뒤 자살한 52명의 유가족(52명) 중 24명(46.1%)은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. 가족을 떠나보내고서야 뒤늦게 신호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. '설마'하는 마음에 '살고 싶다'는 욕망의 표현인 이 신호를 애써 못 본 척하기도 한다. 유가족 20명(38.5%)은 자살 신호라는 걸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. 

자신이 보낸 신호를 아무도 몰라주거나 외면할 때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. 민성호 연세대 원주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"사람의 얼굴이 제각각이듯 자살 신호도 천차만별"이라며 "'죽고 싶다'고 말하는 것 등의 널리 알려진 신호 이외에 자살자 각각이 보낸 신호를 최대한 많이 알아둬야 앞으로 일어날 자살을 막을 수 있다"고 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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